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힐링'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시골에서의 삶이 다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경기도 오산이다. 시골에 살아 본 나로서는 결코 만만치 않는 시골 생활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화를 주기적으로 보는 나의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마음을 힐링하고 싶을 때, 그 어떤 자극도 없이 편안하고 싶을 때 '리틀 포레스트'를 본다. 4계절의 아름다움과 먹방 유튜버도 울고 갈만한 김태리의 음식 먹는 신에선 나도 모르게 뭐라도 집어 먹게 되니깐. '미스터 선샤인'(2008)의 '애기씨' 와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의 '나희도' 와는 또 다른 느낌의 김태리를 지금 만나러 가 보자.
시골로 돌아온 혜원
눈이 쌓여있는 추운 겨울 혜원(김태리)이는 지친 서울 생활을 잠시 벗어나 고향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한동안 사람이 없었던 시골집은 싸늘하다. 당연히 먹을 건 없다. 눈 덮인 마당의 배추 한 포기를 꺼내어 뜨끈한 배춧국을 끓여 저녁밥을 해결한다. 다음날 혜원이는 수제비 반죽을 한다. 숙성이 잘된 수제비를 야무지게 뜯어서 칼칼한 수제비와 어제 뽑아서 남은 배추로 배추전을 만든다.
시골에 온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혜원이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은 다 아는 눈치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있으니깐.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인 은숙이는 전문대를 나와 농협에 취직했다. 한 번도 이 마을 밖을 떠나본 적 없는 은숙이의 꿈은 고향을 탈출하는 것. 친구 은숙이는 시골에 내려온 이유가 다른 이유냐고 묻자 혜원이는 배가 고파서 왔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혜원은 변변치 않게 끼니를 해결하고 늘 인스턴트로 허기를 달랬다. 집으로 찾아온 고모는 툴툴 대면서도 혜원이에게 밥이며 반찬을 바리바리 싸다 준다. 집으로 온 혜원이를 반기고 있던 건 하얀 강아지를 안고 있는 친구 재하이다. 재하는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지만 지금은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작은 과수원을 시작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수능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혜원은 엄마가 떠난 것을 알게 된다. 한마디 말도 없이. 보물찾기 하듯 숨겨놓은 엄마의 편지 속엔 떠날 수밖에 없는 엄마의 구구절절한 변명이 가득했다. 혜원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혜원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금방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란 걸. 혜원이 4살 때 아빠의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왔다. 아픈 아빠의 요양이 목적이었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엄마와 쭈욱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
봄이 왔다. 고사리를 뜯어말려두고 예쁜 봄꽃을 활용하여 파스타도 만들어 먹는 혜원. 어쩜 모든 음식을 저렇게 예쁘게도 만드는지. 혜원이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가 등장한다. 아마도 혜원의 기억이겠지. 오랜만에 편지를 가져다주신 우체부 아저씨의 봉투는 바로 엄마의 편지였다. 내용은 감자 빵 만드는 법. 바로 혜원이 제일 알고 싶었던 레시피였던 것이다. 싱그러운 여름이 왔다.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자라나는 잡초를 뽑으며 혜원은 엄마를 떠올렸다. 어느 한 무더운 여름 모녀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토마토를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혜원은 재배해서 딴 토마토를 먹으며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날 밤 혜원은 미루어 두었던 전화를 건다. 서울에 있는 남자 친구에게 임용고시 합격을 축하하며 잔잔하게 대화한다. 수확의 계절 가을. 뒷산에서 밤을 따다가 달달한 알밤을 만들고 감을 따다가 곶감을 만든다. 곶감에도 엄마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시골을 떠나고 싶어 하는 혜원과 곶감 이야기만 하는 엄마. 곶감을 주무르면 겨울이 왔을 때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혜원은 학교를 갔고 돌아왔을 땐 엄마는 집에 없었다.
결말 (스포 있음)
아빠가 떠난 후에도 도시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은 엄마의 진짜 이유는 혜원을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지금 엄마와 혜원이 모두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라고 편지에 쓰여 있었다. 1년을 거의 보내고 다시 읽은 엄마의 편지를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은 혜원이었다.
그동안 엄마에게는 그녀만의 요리 그리고 혜원이가 그녀만의 작은 숲이었던 것이다. 혜원이는 엄마에게 감자 빵 레시피에 대한 답장을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두고 시골집을 떠난다.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시골로 내려온다. 기다렸다는 듯 재하는 다시 돌아온 혜원이가 그저 반갑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집에는 마루 문이 열려 있고 하얀색 커튼이 나풀거린다. 누군가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영화는 마무리가 된다. 아마도 엄마?
나의 솔직한 리뷰
온갖 자극적인 내용과 배신, 살인이 난무하는 넷플릭스에 이런 잔잔한 영화가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정겨운 시골 풍경과 사계절의 아름다움, 편하지만 가끔은 불편한 동네 어르신들의 참견까지도 어릴 적 시골에 살던 때가 생각이 났다. 리틀 포레스트는 극적인 긴장감이나 갈등은 크게 없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혜원이 만드는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고 싶기도 하고, 어찌나 모든 요리를 척척 잘 만들어 내는지 참 신기하기도 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엄마는 요리 씬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딸에 대한 사랑이 참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혜원을 뿌리내리기 위해 아주심기를 했던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뭉클했다. 시골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시골에 내려가 며칠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번 주말 잔잔한 힐링을 원한다면,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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